알립니다.

봄이 온다.

Spring is coming  봄이 온다


비가 온 후, 봄이 오는 것을 알았다.


며칠 전, 기분 좋은 비가 왔다. 정겨운 느낌의 오후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손끝과 얼굴에 떨어지는 빗물이 차갑지 않았다. 그래서 겨울이 끝났음을 알았다. 비가 그치면 바싹 말랐던 나무에 새싹이 돋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꽃들이 길가를 채울 것이라 생각했다.


들뜬 기분에 멋진 글이라도 써야겠다 생각하고 창을 열었다. 그러나 봄이 온다는 말 외에는 달리 쓸 말이 없었다. 글쓰기도 사업과 다를 바 없구나 싶었다. 봄이 온다는 들뜬 마음에 창을 열듯, 나만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겠다고 회사부터 차렸다. 정작 뭘 만들지 생각하지 않은 채, 뭐든 잘 만들 수 있다는 오만의 함정에 빠졌다.


봄이 되었으니, 씨를 뿌려야겠다. 넓은 대지의 커다란 농장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튼튼한 종자를 고르고, 기름진 땅을 일궈야겠다. 작은 밭이라면 오히려 하나 하나 까다롭게 골라야 할지 모른다. 키우는 방법과 시기도 잘 살펴봐야 한다. 그렇지만, 모든 일은 가을의 수확을 위해 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사업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키우는 재미에 빠져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 전 회사 홈페이지에 넣을 소개글을 썼다. 짧고 간결한 말로 회사를 설명하려고 했다. “유익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설립했다”라는 짧은 말이었다. 다소 모호한 말로 쓴 이유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봄비 같은 느낌으로 올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정겨운 봄비가 온 후에는. 말랐던 대지가 기름진 흙으로 거듭날 것 같았다.


이제 봄이 온다. 우리의 시간이 온다.

2022.03.28 병희